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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8
<순례자 256> 예배음악의 개혁

예배와 집회는 구분되어야 한다.

미국의 대각성운동과 서부 개척기에 생긴 소위 변방예배(frontier worship)에서 예배라기보다는 집회라는 형태로 축제적 성격이 짙은 즉 격식과 절차의 필요성을 중요시하지 않는 편리한 예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서부 개척기에 교회 건물도 없는 황야에서 천막을 치고, 오르간이 없어 간편한 기타로, 예전보다는 설교 중심 예배를 드렸다. 설교사역이 뜨거워진 것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으나 탈예전적 예배 형태는 심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기도, 찬양 심지어 성경 봉독까지도 설교를 듣기 위한 준비행위로 격하시키고 모든 것은 경험이나 특히 회심의 황홀경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복음을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오지의 생명들이었다. 그래서 전도가 지상명령인고로 예배가 경배와 찬양, 감사와 봉헌, 참회와 간구를 통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그분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보다 사람이 듣기 쉽고, 좋아할 예배로 즉 인본주의적 예배로 탈바꿈하여 자기 행복과 기쁨을 찾는 샤마니즘적 예배로 혼돈하기까지 했다.

성가대와 찬양대는 다르다.

찬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최상의 방법이요 도구다. 하나님은 거룩한 노래를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고 자기를 찬양하는 성도들의 찬양 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칼빈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시편)으로가 아니면 하나님을 바로 찬양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늘날 소위 복음송을 신령한 노래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신령한 노래란 시편을 말하는 시와 교리를 중심한 찬미 외에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노래를 말한다.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복음송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철학, 문학의 영향을 받은 세속화된 교회의 유행가로 분류해야 한다. 가사가 성경적이지 못하거나 신앙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Rock 음악이나 Pop음악과 구별이 되지 않고 타락한 노래를 교회가 여과없이 쉽게 수용하고 있다. 어떤 복음송은 흑인들의 블루스 음악과 가사가 비슷하며 곡들은 재즈의 형태를 취한 것도 있다. 샤마니즘이나 불교의식에서 사용되는 악기들까지 들여와 교인들을 혼란케 한다. 아무 악기나 예배에 동원될 수 없고 예배시 사용할 악기들을 성경(시150편)은 가르치고 있다.

손뼉치며 춤추며 찬양은 바른 찬송 태도가 아니다.

유대인들이나 구약의 예배의식에서 손뼉치는 일은 없었다. 회당예배, 사도들의 예배, 기독교회의 2천년 예배에도 광란적이고 소란하게 춤추는 예배는 없었다.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시47:1) 히브리인들은 시를 읊을 때 고저장단의 리듬 없이 단조로운 음으로 노래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떨림으로 예배할 때 기쁜 마음을 갖고 마음을 다해 찬양하라 하신 것이다. ‘손바닥을 치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환영, 존경, 지지, 보답을 하라는 것이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이런 정신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라는 것이다. 찬송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노래로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신앙적 행위이므로 자기 즐거움을 위하여 또는 자기 영광을 찾는 노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생한 영이 성령 충만하여 마음 중심으로 맑은 정신을 갖고 드려야 한다. 덕을 세워 새 노래를 새 마음(깨달은 마음)으로 부르는 구원 받은 자의 노래여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것이 와야 된다는 생각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공예배와 소그룹집회 구분은 문제가 있다.

공예배를 목회의 중심으로 보지 않고 주변적이고, 무익하며, 지루하고 부적절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소그룹 모임이 효과적이라는 소위 두 날개 예배를 강조하는 풍조까지 생겨났다. 소그룹은 더 친근감이 있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 한다. 그러나 칼빈이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보다 함께 더불어 설교를 듣는 것이 영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만나 영원한 교제를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벧엘, 장막, 성전,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 임재하신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예배하는 것을 무겁게 다루신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께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였더니 불이 그들을 삼켜 죽이셨다.”(레10:1-2) 우리는 성경적 예배와 찬양을 삼위일체 하나님께 마음,・뜻,・힘을 다해 드리자.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한국장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