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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4
예배와 성례
고전 10:1-13
 

제21강 예배와 성례
(고전 10:1-13)


1. 예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개혁은 칼빈의 중심 관심사이다.
예배에는 설교, 기도, 성례집행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개혁하는 것은 칼빈의 중심관심사 다.

① 예배의 실제
칼빈은 교회 건물에서 십자가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적 형상이나 상징들을 제거함으로 깨끗하게 했다. 그는 회중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성경을 읽고 설교하는 것을 예배의 중심으로 삼았다. 성경이 보증하지 않는 의식들과 행사들을 없앴다. 악기들을 제거하고 회중이 시편을 노래케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그리고 심오한 감각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갖는 만남을 예배의 중심으로 회복시켰다.

② 예배의 신학
하나님의 영적인 성질은 예배에 있어서 그리고 우상숭배를 피하는 모든 노력에 있어서 기초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는 결코 가시적 형태로 묘사되어서는 안 된다. (1.2.1) 칼빈은 우상에 대한 어떤 그림자들이라도 피하기 위해서 종교 개혁 전에 사용되던 눈에 띄는 것들을 공격했다.

ⅰ) 동방정교회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영적 성질 때문에 흉상들 뿐아니라 그림들과 모자이크들도 배척한다.(1.2.4)
ⅱ) 갈4:8에 따라 예배(latria)는 하나님에게만 드려지고 숭배(dulia)는 형상들이나 성인들에게 드려지는 것이라는 중세 신학자들이 만든 구별을 논박했다. 그러한 구별은 예배 행위에서 불가능하며 비성경적이다.
ⅲ) 그는 형상들이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책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배척했다.(1.2.7) 타락한 인류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형상들로 묘사하여 하나님의 성질을 위태롭게 하려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사람의 본성적 성격이 끊임없는 우상의 공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1.2.8) 기독교인들에게는 여러 형상 뿐 만아니라 인간의 마음으로 고안해 낸 모든 형태의 예배도 금지된다. 복장들, 의식들, 사제들, 제사들로 표현된 중세교회의 허식적 거룩함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만이 자신의 예배를 규정하실 수 있다. 그 분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소개할 권한을 교회에게 주지 않으셨다.(4.10.8) 계시된 예배로부터 더하거나 빼려는 유혹들은 대단해서 열정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바울에 의하면 교회 안의 모든 모조예배는 정죄되며 그것이 인간성을 기쁘게 하면 할수록 더욱 신자들에게는 의심스러운 것이다.(4.10.11) 교회는 하나님의 보증 없이 교회가 고안한 예배에 성도들의 양심을 묶을 권세가 없다고 강조한다.(4.10.27)
비성경적인 의식들은 타락한 인간성에게 매우 매혹적이다.(4.10.12)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단순한 예배 형식들은 그와는 매우 다르며 우리를 곧바로 그리스도에게 인도한다. (4.10.29)
예배를 위한 외적인 준비가 세세하게 성경에 계시되었다는 주장은 하지 않지만 교회는 주일날 예배의 횟수, 예배드릴 때 몸의 자세(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무릎 꿇는 자세)와 같이 예배 본질이 아닌 외적인 것들을 명령할 재량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예배에 대한 칼빈의 접근법 즉 예배의 규제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는 하나님 말씀만이 모든 예배 요소들을 규정, 지시, 보장한다고 한다.
참예배는 참된 성례들을 포함하는데 칼빈은 그 성례들을 부분적으로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에게 한 맹세들이라고 이해했다.

2. 성례
칼빈에게 성례들은 예배의 중심되고 중요한 부분이었다. 4권의 45%와 기독교강요 약14%가 성례에 관한 것이다.
성례는 우리의 믿음에 도움을 주는 또 하나의 수단이다. 이것은 복음전파와 관련되어 있다. 성례는 우리의 약한 믿음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의 선하신 뜻의 약속들을 우리의 양심에 인(印)치시는 외형적인 표지이고 우리 편에서는 주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증하는 것이다.(4.14.1)
다시 말한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이고 또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경건의 표현이기도 하다. 본래 은혜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성례전은 눈에 보이는 은혜이다.
성례전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 그가 우리에게 행하라고 명하신 일, 사도들이 따랐던 일, 그리고 보다 더 순수한 교회가 지킨 것이다. 이 성례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우리가 더욱 더 굳게 갖게 하기 위한 하나의 행위들이다. 또 우리는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물질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어거스틴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말씀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처럼 보여 주며 생생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성례는 우리의 믿음의 기둥이라 부를 수 있다. 믿음은 말씀을 기초로 삼고 그 위에 서 있지만 성례가 첨가될 때에는 기둥으로 받친 것같이 더욱 튼튼하게 서 있게 된다. 믿음을 굳게 하는 의무를 성례가 수행하려면 반드시 지적교사인 성령께서 임하실 때만 적절하게 수행하게 되는데 성령과 성례를 구별해서 역사하는 힘은 전자에만 있고 그 임무는 후자에만 돌린다.
성례전은 그 속에 존재하는 교사이신 성령께서 참여하시는 때에만 비로소 제대로 임무를 다 할 수 있다. 오직 성령의 힘에 의해서만 마음이 뚫리고 감정이 고조되어 성례전을 받아드리는 마음 문이 열리게 된다.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성례전은 우리의 신앙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성령께서는 외적인 말씀과 성례를 우리의 귀로부터 영혼에 전달한다.
말씀과 성례가 우리를 향한 하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눈앞에 제시할 때 우리의 믿음을 확증시켜 준다. 우리는 성례 자체를 믿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성례에 돌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믿음과 고백 모든 것을 제쳐놓고 성례와 만물의 근원이신 분을 향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성례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모든 성례의 본체(실체)는 그리스도시다. 성례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확실하고 그를 떠나서는 성례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례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배양, 강화, 증진시키며 그를 더욱 완전히 소유하고 그의 풍부한 은혜를 즐기게 되는 것과 정비례해서 성례전이 우리들 사이에서 효과를 나타낸다. 그렇게 되려면 성례의 제시하는 것을 참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례의 진정한 기능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기능이 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제시하며 그 안에서 하늘 은혜의 보화들을 제시하는 기능을 가졌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거나 그리스도를 형상으로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칼빈은 세례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로 계수되게 하기 위해서 교회의 교제 안으로 받아지는 가입의 표지이다.(4.15.1) 세례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 세례받는 사람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 ⓑ 세례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는 것을 세상에 증거 하는 것이다.
칼빈에게 세례는 3가지 약속들을 가져오기 때문에 기독교인들과 교회의 믿음을 강화시킨다. 첫 번째 약속은 깨끗하게 함 즉 죄를 용서함이다. 물 자체로는 깨끗케 하고 재생, 갱신시키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례에서 그러한 은사에 대한 지식과 확실함을 받는다.(4.15.2) 두 번째 약속은 살죄(mortification)와 갱신(renewal)이다.(4.15.5) 육의 삶은 죽어가게 하고 성령의 삶은 세워 나가는 성화 시킬 것을 약속하신다. 세 번째 약속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분의 모든 축복을 나누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분의 공로의 모든 유익이 그들의 것이 된다.
성찬식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양육하시기 위해서 주신 음식이라 한다.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기쁨, 확신을 얻는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사역은 믿음으로 성찬상에 나아온 모든 이들에게 확실하다.(4.17.10) 믿음은 약속을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성령으로 일하시게도 못하나 오직 믿음만으로 약속된 축복과 성령을 받는다.
세례에 관하여 하나님 말씀에 반대되는 의견들에게 칼빈은 답변한다.
① 세례요한의 세례, 예수님의 세례, 사도들의 세례가 죄를 회개하고 죄용서를 입증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똑같다. 세례는 두 번 행할 수 없다.
② 세례가 원죄를 제거한다는 중세교회의 교리를 배척한다.
③ 믿음으로 세례를 받을 때만 축복이 된다.

이종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