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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우리말 성경의 역사 4
천국시민 양성 - 신앙강좌반

- 이수정의 마가복음(두 번째 우리말 성경)

1882년 이수정은 제3차 수신사의 박영효 일행으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의 농업정책에 제일 큰 관심을 가진 이수정은 일전에 일본에 다녀온 선배 안종수의 주선으로 농학박사이자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도자인 쯔다센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는 광대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일본이 근대화되려면 속히 기독교를 수용해야 한다고 외쳤던 인물이었다. 이날 선물로 받은 한문성경을 탐독하면서 회심에 이르고 복음을 받아들여, 1883년 4월 29일 동경의 노월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수정의 가장 큰 소망은 조선 민족에게 철도와 전신, 기선보다 더 필요한 성경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한다면 한국으로 들어가는 선교사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한문에 한글로 토를 다는 방식으로 <현토한한신약성서>를 제작하였다. 이것은 성경의 번역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당시 한학자들이 한서에 널리 쓰던 방식으로서, 우리말 번역에 이르는 과정의 한 단계로 평가할 수 있다. 1884년 미국성서공회 일본지부 총무인 루미스(H. Loomis)에 의해 인쇄 출간되었다. 여기에는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이 포함된다.

1885년 이수정은 순수 우리말로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출간하였다. 당시 조선에 최초로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이수정은 놀라 기뻐하며 요코하마에 있던 언더우드를 찾아가 전달하여, 마침내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에 상륙할 때 가지고 들어온다. 이때 언더우드는 이수정의 마가복음이 최초의 조선어 성경인 줄 알았으나 얼마 후 서상륜이 이미 로스역 성경을 들고 전도하러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수정 역은 만주에서 번역된 <예수셩교젼셔>와는 달리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하였고, 고유명사 표기가 원어에 가깝다. 특히 이 성경번역은 그 나라 사람이 그 나라말로 번역한 성경을 최초의 선교사가 가지고 입국했다는 것은 전 세계 선교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기에 선교학적인 측면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한국 기독교는 신앙의 선조들이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수고와 노력 가운데 뿌리내리게 되었다. 우리말 성경이 번역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수정의 마가복음은 우리말 성경 번역의 역사에서 두 번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뒤, 조선 조정이 귀국할 것을 회유하여 이수정 선교사는 1886년 5월 입국하지만 곧바로 한양으로 압송되어 관헌에 의해 처형되었다.



요약정리 : 김애리 집사(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