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중세교회사의 시간과 공간
1. 서론적 질문: 메타서술, 유럽중심의 역사서술에 대한 문제제기
“중세교회사를 유럽중심 - 특히 서유럽 중심 - 으로 서술하는 것이 과연 온전한 교회사 서술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를 질문함으로써 이번 강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서유럽 중심으로 중세교회사를 서술하는 것은 마치 남성 중심의 역사서술로 온전한 인류의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영웅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상으로, 온전한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과 모든 사람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역사를 서술하게 되면 사료의 제약 연구자의 역량의 제한 및 연구에 필요한 시간과 재정의 불충분 등의 이유로 ‘전체사’ 서술이 여의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 새문안교회 창립 135주년 기념 제 13회 언더우드 심포지엄의 강사로 초대된 존 코클리(John Wayland Coakley)는 서구 기독교 역사 서술의 하나인 메타서사(Metanarrative)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을 제기하였습니다.
역사가들은 기독교 역사가의 활동 핵심을 - 모든 역사가의 활동 핵심을 - 사실보다는 의미의 분별이며 같은 의미에서 신앙의 행위라고 다시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논쟁 중에서도 서구 역사가들이 광범위한 기독교역사를 파악하는 형태, 즉 전체 기독교사의 “메타서사”는 의문시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이 메타서사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예수의 삶에 기원을 둔 기독교운동의 초기로부터 시작하여 지중해 유역으로의 확산, 로마제국에서 종교로의 최종적인 확립, 삼위일체론 및 기독론과 같은 교리들을 규정한 4-5세기의 공의회들을 추적하여 다룬다. 그런 다음, 이 메타서사는 지중해 유역으로부터 유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중세 유럽의 기독교운동의 주된 흐름을 추적하여 게르만족의 회심과 유럽 기독교사회의 확립, 유럽에서의 기독교 사상과 제도의 발흥을 다룬다. 그 후, 동방정교회와 중동의 고대교회들을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대기에 북대서양 이외의 기독교사는 “선교 역사”로 격하되어 메타서사의 주된 흐름에 의존하는 지류가 되었다. 역사가들이 전반적으로 가정하는 것은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유럽인들과 그 후손인 미국인들의 종교라는 것이다.
코클리의 비판은 메타서사에 대한 문제제기, 유럽중심의 역사서술에 대한 문제제기, 동방정교회와 중동의 고대 교회들의 존재격하에 대한 문제제기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코크리의 비판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메타서사의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메타서사(Metanarrative)는 거대서사(Grand Narrative)라고도 하는데, “Meta”는 그리스어로 “너머(beyond)”라는 뜻이고, “Narrative”는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되는) 서술로 특징지어지는 이야기를 뜻합니다. 따라서 문자적인 메타서사의 의미는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이고, 이 용어가 학술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이야기 전달 방식을 실험하고 탐구하는 서사로, 주로 서사의 인위적 특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주로 사회, 역사,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이야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는 특정한 시대나 사회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이념적 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메타서사가 갖는 특징은 네가지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보편성입니다. 특정 사회나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설명을 제공하려 합니다. 둘째는 권위입니다. 사회적 규범과 가치체계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합니다. 셋째는 총체성입니다. 개별적인 사건이나 현상을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포함시킵니다. 넷째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입니다. 종종 특정 이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계급투쟁과 혁명을 통해 생산방식이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간다는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Marxism) 역사서술이나, 인간 이성의 발전을 통해 과학과 기술이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계몽주의(Enlightenment) 역사서술 등이 있습니다.
2. 중세 교회사의 공간
중세교회사를 주제로 하는 대부분의 연구서들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및 미주 역사학자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기술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서구 중심의 학문적 전통으로 인해 중세교회사의 주요 무대를 유럽으로 한정하는 편향된 시각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서유럽 중심의 중세교회사 서술 방식에 대해 아시아 교회사 연구자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는데, 이는 중세 시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기독교 복음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몽고 제국에까지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는 명확한 역사적 증거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시아교회사 연구자들은 동서양 문화교류의 대표적 증거로 금속활자의 발명과 전파 과정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중세 시기 아시아 기독교의 문화적 영향력과 역사적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를 직접 목격하고 전해받은 사도들을 통해 초기 교회 공동체를 탄생시켰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은 이 놀라운 복음의 메시지를 예루살렘에서부터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점차 확산되어 활기찬 항구 도시 에베소와 로마의 식민지였던 빌립보,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였던 고린도를 포함한 그리스와 발칸반도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더 나아가 제국의 수도인 로마와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이 있는 서유럽으로, 동로마 제국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과 최초의 공의회가 열린 니케아가 있는 동유럽으로, 그리고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와 아프리카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카르타고가 있는 북부 아프리카까지 널리 전해졌습니다. 신약성경이 당시 국제어였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초대교회의 주요 활동 영역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문화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분의 삶과 가르침,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전해받은 열두 사도들과 그 외 제자들을 통해 초기 교회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목격자들은 성령 강림 이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이 놀라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설교와 증언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점차 확산되어 에베소의 번창하는 항구 도시에서 상인들과 여행자들을 통해, 빌립보의 로마 식민지에서 군인들과 관리들을 통해, 그리고 고린도의 상업 중심지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와 발칸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도시들은 각각 독특한 특성을 지닌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며 복음의 전진기지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제국의 정치적 중심지인 수도 로마와 먼 변방 이베리아 반도의 서유럽으로, 동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플과 기독교 교리의 기틀을 마련한 최초의 공의회가 열린 니케아가 있는 동유럽으로, 그리고 철학과 신학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와 라틴어권 아프리카 기독교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카르타고를 포함한 북부 아프리카 전역으로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이 당시 국제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기록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초대교회의 주요 활동 영역은 헬라어권이었으며, 이는 복음이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언어적 통일성은 교회의 가르침과 신학적 논의가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발전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중세교회사의 지리적 범위, 곧 공간을 로마로 대표되는 서유럽문명과 콘스탄티노플로 대표되는 비잔틴문명을 대등한 관계로 놓아 두 중심축으로 설정하고 공간을 확장해서 서술함으로써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공간이 확대 되면 시간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공간을 통합함으로써 지리적 영역은 확대되는 반면에, 둘 사이의 공통분모에 해당되는 시간은 축소될 수 있습니다. 동방정교회와 중동의 고대교회들의 존재감에 대한 문제는 교회사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다룸으로써 보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중세교회사의 시간: 시대구분의 문제
차하순은 『새로쓴 서양사 총론 1』 서론에서 역사구분의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효과적으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의수단이 필요하다. 역사는 전체로서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모든 역사를 한꺼번에 다룰 수 없으며, 우리가 모든 역사를 단 하나의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다. 역사이해를 위한 편의수단 중 하나가 역사구분이며, 그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시대구분이다. 전통적으로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는 3분법이 있었고, 여기에 현대를 추가하여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시대구분법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삼분법도 역사가마다 각 시대의 시작과 끝이 다르며, 각 시대를 세분하는 방식도 상이하다. 그 밖에 역사이해를 위해 주제, 지역, 분야에 따른 구분도 사용된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1차대전 등은 주제별 구분이고, 유럽사, 지중해 세계, 신성로마제국, 고대 그리스 등은 지역별 구분이며,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중세의 장원 경제, 차티스트 운동, 19세기의 사상 등은 분야별 구분이다. 구분은 어떤 의미에서든 중요하며, 특히 역사이해의 필수적인 수단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시대 구분의 틀을 지키면서 주제, 지역, 분야에 따른 구분을 활용하여 역사이해를 위한 다각적인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차하순 교수님이 지적하듯이 "구분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하며, 특히 역사이해에 필수적인 수단"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구분이 필요하고 "역사이해를 위한 다각적인 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중세교회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새로운 시대구분을 시도해 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역사적 사건들과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각 시대의 특징과 변화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인류문명사는 고대 그리스문명,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서술을 시작합니다. 이는 문명의 발달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전통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새로쓴 서양사 총론 1』에서도 이러한 접근법을 따라 1장은 선사시대의 인류 발달 과정을, 2장은 고대 동방의 다양한 문명들의 발전과 특징을 상세히 다루고, 3장에서는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되는 고대 그리스 문명을 심도 있게 서술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고대 그리스 문명 중 에게 문명이 기원전 3000년경에 시작되어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적, 문화적으로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문명의 발전부터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전환점까지를 고대사의 범주로 설정하여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더불어, 2021년에 출간된 국내 서양고대사 관련 도서인 정기문의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에서도 이러한 시대구분을 따르면서 고대 동방의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을 포함하여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를 고대사의 범주로 포괄적으로 다루며, 각 문명의 특징과 상호 영향관계를 상세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서양문명사에서 고대와 중세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은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며, 이는 중세교회사의 시대 구분에서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됩니다. 서양문명사의 시대 구분을 살펴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시작된 기원전 3000년경부터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까지의 약 3,500년간의 기간을 고대로 분류하며, 이후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약 1,000년간을 중세시대로 구분합니다. 한편 교회사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형성으로부터 서로마제국 멸망까지의 약 500년을 고대교회사로 구분하고,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부터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종교개혁의 서막을 연 시기까지의 약 1,000년간을 중세교회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중세교회사를 단순히 로마가톨릭교회의 전유물로만 인식하고 그 시기의 연구와 이해를 소홀히 한 결과, 기독교 2,000년 역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세교회사 속에 담긴 풍부한 영적, 문화적, 신학적 유산들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4. 결론적 진술
중세교회사 연구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균형 잡힌 조망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존 연구들이 서유럽 중심적 서술에 치중해왔으나, 동방정교회, 중동의 고대교회,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의 기독교 전파와 발전을 포함하는 포괄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메타서사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시대 구분과 공간적 확장을 통해 중세교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의 공간적 확장을 고려할 때는 실크로드를 통한 기독교의 이동, 네스토리우스파의 동방 확산, 이슬람 세계와의 접촉을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유럽 중심적 서술을 보완하여 더욱 총체적인 기독교 역사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측면에서는 서로마제국의 몰락이라는 중세교회사의 시작점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세교회사는 서유럽의 역사로 한정될 수 없으며, 여러 문화권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발전, 신학적 논쟁, 교회 제도의 형성을 포괄적으로 탐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세교회사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오늘날의 기독교와 세계 문명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시대입니다. 따라서 중세교회사 연구는 서구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권의 기독교적 경험을 반영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온전한 기독교 역사를 구성하고, 현대 신학과 교회 공동체가 직면한 여러 도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1강: 중세교회사의 시간과 공간
1. 서론적 질문: 메타서술, 유럽중심의 역사서술에 대한 문제제기
“중세교회사를 유럽중심 - 특히 서유럽 중심 - 으로 서술하는 것이 과연 온전한 교회사 서술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를 질문함으로써 이번 강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서유럽 중심으로 중세교회사를 서술하는 것은 마치 남성 중심의 역사서술로 온전한 인류의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영웅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상으로, 온전한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과 모든 사람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역사를 서술하게 되면 사료의 제약 연구자의 역량의 제한 및 연구에 필요한 시간과 재정의 불충분 등의 이유로 ‘전체사’ 서술이 여의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 새문안교회 창립 135주년 기념 제 13회 언더우드 심포지엄의 강사로 초대된 존 코클리(John Wayland Coakley)는 서구 기독교 역사 서술의 하나인 메타서사(Metanarrative)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을 제기하였습니다.
코클리의 비판은 메타서사에 대한 문제제기, 유럽중심의 역사서술에 대한 문제제기, 동방정교회와 중동의 고대 교회들의 존재격하에 대한 문제제기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코크리의 비판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메타서사의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메타서사(Metanarrative)는 거대서사(Grand Narrative)라고도 하는데, “Meta”는 그리스어로 “너머(beyond)”라는 뜻이고, “Narrative”는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되는) 서술로 특징지어지는 이야기를 뜻합니다. 따라서 문자적인 메타서사의 의미는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이고, 이 용어가 학술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이야기 전달 방식을 실험하고 탐구하는 서사로, 주로 서사의 인위적 특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주로 사회, 역사,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이야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는 특정한 시대나 사회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이념적 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메타서사가 갖는 특징은 네가지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보편성입니다. 특정 사회나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설명을 제공하려 합니다. 둘째는 권위입니다. 사회적 규범과 가치체계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합니다. 셋째는 총체성입니다. 개별적인 사건이나 현상을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포함시킵니다. 넷째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입니다. 종종 특정 이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계급투쟁과 혁명을 통해 생산방식이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간다는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Marxism) 역사서술이나, 인간 이성의 발전을 통해 과학과 기술이 사회를 진보시킨다는 계몽주의(Enlightenment) 역사서술 등이 있습니다.
2. 중세 교회사의 공간
중세교회사를 주제로 하는 대부분의 연구서들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및 미주 역사학자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기술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서구 중심의 학문적 전통으로 인해 중세교회사의 주요 무대를 유럽으로 한정하는 편향된 시각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서유럽 중심의 중세교회사 서술 방식에 대해 아시아 교회사 연구자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는데, 이는 중세 시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기독교 복음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몽고 제국에까지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는 명확한 역사적 증거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시아교회사 연구자들은 동서양 문화교류의 대표적 증거로 금속활자의 발명과 전파 과정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중세 시기 아시아 기독교의 문화적 영향력과 역사적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를 직접 목격하고 전해받은 사도들을 통해 초기 교회 공동체를 탄생시켰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은 이 놀라운 복음의 메시지를 예루살렘에서부터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점차 확산되어 활기찬 항구 도시 에베소와 로마의 식민지였던 빌립보,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였던 고린도를 포함한 그리스와 발칸반도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더 나아가 제국의 수도인 로마와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이 있는 서유럽으로, 동로마 제국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과 최초의 공의회가 열린 니케아가 있는 동유럽으로, 그리고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와 아프리카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카르타고가 있는 북부 아프리카까지 널리 전해졌습니다. 신약성경이 당시 국제어였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초대교회의 주요 활동 영역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문화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분의 삶과 가르침,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전해받은 열두 사도들과 그 외 제자들을 통해 초기 교회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목격자들은 성령 강림 이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이 놀라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설교와 증언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점차 확산되어 에베소의 번창하는 항구 도시에서 상인들과 여행자들을 통해, 빌립보의 로마 식민지에서 군인들과 관리들을 통해, 그리고 고린도의 상업 중심지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와 발칸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도시들은 각각 독특한 특성을 지닌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며 복음의 전진기지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제국의 정치적 중심지인 수도 로마와 먼 변방 이베리아 반도의 서유럽으로, 동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플과 기독교 교리의 기틀을 마련한 최초의 공의회가 열린 니케아가 있는 동유럽으로, 그리고 철학과 신학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와 라틴어권 아프리카 기독교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카르타고를 포함한 북부 아프리카 전역으로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이 당시 국제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기록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초대교회의 주요 활동 영역은 헬라어권이었으며, 이는 복음이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언어적 통일성은 교회의 가르침과 신학적 논의가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발전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중세교회사의 지리적 범위, 곧 공간을 로마로 대표되는 서유럽문명과 콘스탄티노플로 대표되는 비잔틴문명을 대등한 관계로 놓아 두 중심축으로 설정하고 공간을 확장해서 서술함으로써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공간이 확대 되면 시간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공간을 통합함으로써 지리적 영역은 확대되는 반면에, 둘 사이의 공통분모에 해당되는 시간은 축소될 수 있습니다. 동방정교회와 중동의 고대교회들의 존재감에 대한 문제는 교회사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다룸으로써 보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중세교회사의 시간: 시대구분의 문제
차하순은 『새로쓴 서양사 총론 1』 서론에서 역사구분의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차하순 교수님이 지적하듯이 "구분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하며, 특히 역사이해에 필수적인 수단"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구분이 필요하고 "역사이해를 위한 다각적인 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중세교회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새로운 시대구분을 시도해 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역사적 사건들과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각 시대의 특징과 변화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인류문명사는 고대 그리스문명,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서술을 시작합니다. 이는 문명의 발달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전통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새로쓴 서양사 총론 1』에서도 이러한 접근법을 따라 1장은 선사시대의 인류 발달 과정을, 2장은 고대 동방의 다양한 문명들의 발전과 특징을 상세히 다루고, 3장에서는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되는 고대 그리스 문명을 심도 있게 서술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고대 그리스 문명 중 에게 문명이 기원전 3000년경에 시작되어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적, 문화적으로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문명의 발전부터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전환점까지를 고대사의 범주로 설정하여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더불어, 2021년에 출간된 국내 서양고대사 관련 도서인 정기문의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에서도 이러한 시대구분을 따르면서 고대 동방의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을 포함하여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를 고대사의 범주로 포괄적으로 다루며, 각 문명의 특징과 상호 영향관계를 상세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서양문명사에서 고대와 중세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은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며, 이는 중세교회사의 시대 구분에서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됩니다. 서양문명사의 시대 구분을 살펴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시작된 기원전 3000년경부터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까지의 약 3,500년간의 기간을 고대로 분류하며, 이후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약 1,000년간을 중세시대로 구분합니다. 한편 교회사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형성으로부터 서로마제국 멸망까지의 약 500년을 고대교회사로 구분하고,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부터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종교개혁의 서막을 연 시기까지의 약 1,000년간을 중세교회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중세교회사를 단순히 로마가톨릭교회의 전유물로만 인식하고 그 시기의 연구와 이해를 소홀히 한 결과, 기독교 2,000년 역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세교회사 속에 담긴 풍부한 영적, 문화적, 신학적 유산들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4. 결론적 진술
중세교회사 연구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균형 잡힌 조망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존 연구들이 서유럽 중심적 서술에 치중해왔으나, 동방정교회, 중동의 고대교회,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의 기독교 전파와 발전을 포함하는 포괄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메타서사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시대 구분과 공간적 확장을 통해 중세교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의 공간적 확장을 고려할 때는 실크로드를 통한 기독교의 이동, 네스토리우스파의 동방 확산, 이슬람 세계와의 접촉을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유럽 중심적 서술을 보완하여 더욱 총체적인 기독교 역사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측면에서는 서로마제국의 몰락이라는 중세교회사의 시작점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세교회사는 서유럽의 역사로 한정될 수 없으며, 여러 문화권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발전, 신학적 논쟁, 교회 제도의 형성을 포괄적으로 탐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세교회사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오늘날의 기독교와 세계 문명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시대입니다. 따라서 중세교회사 연구는 서구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권의 기독교적 경험을 반영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온전한 기독교 역사를 구성하고, 현대 신학과 교회 공동체가 직면한 여러 도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