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강: 중세의 보편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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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강: 중세의 보편논쟁

 

1. 서론적 질문: 이름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이 시간에는 얼핏 보기에는 철학적이고 조금 낯설어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신앙, 성경 해석, 교육 방식, 그리고 AI 시대의 사고 구조까지 깊게 관통하는 한 주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중세의 보편논쟁(universal debate)입니다. 이 거대한 이야기를 작은 질문 하나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사자(lion)라는 단어는 실제로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요?” 겉보기에는 너무 간단합니다.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어나디는 맹수입니다. 동물원의 사자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놀라울 만큼 깊은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사자(lion)”라고 말하지만 각자가 마음 속에서 떠올리는 ‘사자’는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애니매이션 <라이온 킹>의 실바를 떠올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니아 연대기>의 아슬란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실제로 본 동물원의 사자를 떠올립니다.

  단어는 하나이지만, 실제 사라는 여러 마리이고, 마음속 이미지는 각자가 다릅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질문은 이렇게 변합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모든 사자를 관통하는 ‘사자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 ‘사자됨’이라는 공통 본질이 실제로 존재할까요? 존재한다면 어디에 존재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에 실제로 존재할까요? 아니면 우리 마음 속 개념으로만 존재할까요? 아니면 그냥 이름(name)일 뿐일까요? 즉, 이름과 실제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환원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질문이, 철학자들의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질문이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우리가 교육에서 ‘개념’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우리가 AI가 이해한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는지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질문이 됩니다.

  중세 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실재론(realism), 유명론(nominalism), 개념론(conceptualism)으로 나누어 수백 년 동안 논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이 문제는 단순한 말 또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삼위일체의 이해, 성례전이 어떻게 은혜를 전달하는가, 성경의 단어가 가리키는 것이 무어인가 등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질문한 ‘사자(lion)’의 문제는 결국 ‘하나님’의 이름까지 이어지는 중세 철학자들의 질문을 압축해 놓을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21세기, 이 질문이 다시 되살아났는데, 왜냐하면 AI 때문입니다. AI는 단어 하나를 들으면 수천억 개 패턴을 통해 의미를 ‘계산’합니다. AI가 인식하는 ‘사자’는 이미지 패턴의 조합입니다. AI가 말하는 ‘사랑’은 언어 패턴의 통계적 예측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AI가 제시하는 단어의 의미는 ‘실재’인가? 아니면 그저 인간이 붙여놓은 ‘이름’들의 조합일 뿐인가? 다시 말해, AI는 ‘사자됨’ 같은 공통 본질을 이해하는가? 아니면 개별 이미지들의 ‘표지(lable)’만 분류하는가? 놀랍게도, 이 질문은 중세의 보편논쟁과 정확히 같은 질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이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개념은 어떻게 생기는가?”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실재와 언어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것은 철학자의 질문이 아니라 신학자, 교육자, AI 연구자,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강의는 바로 이 질문을 중세 신학자들과 함께 깊이 살펴보고, 오늘의 우리의 삶, 신앙, 해석, 교육, 그리고 AI시대가 가진 문제와 연겨해서 풀어가는 시간입니다.

 

2. 실재론(Realism) - “보편은 실제로 존재한다”

 

  서론에서 “사자”라는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질문해 보았는데, 이 질문 앞에서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들, 그리고 중세 신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실재론자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편, 즉 사자됨, 선함, 아름다움, 진리 같은 것들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

1) 실재론이 말하는 핵심: 보편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실재론자들은 “사자”라는 단어가 단순히 여러 사자들을 묶어 부르는 편의적인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개별 사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자됨’이라는 공통 본질이 존재한다. 이 본질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이다.” 예를 들면 이런 생각과 비슷합니다. 모든 선한 행동에는 ‘선함(goodness)’의 본질이 있다. 삼위일체는 서로 다른 위격이지만 ‘신성’이라는 하나님의 본질을 공유한다. 즉 보이지 않아도 ‘공통 본질’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2) 왜 그렇게 믿었을까?: 현실 세계는 ‘함께 공유하는 질서’로 보였기 때문

  중세 사람들은 세상에는 혼란이 아니라 질서가 있고, 그 질서의 근거에는 하나님이 만든 본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왜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에게는 ‘인간됨’이라는 본질이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우리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이유도, 선에는 ‘선함’이라는 실제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하나의 교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교회에도 ‘보편적 교회됨’이라는 본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일관된 질서, 도덕, 신학적 개념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름 붙이기’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실재론자들은 “세상은 우연한 집합이 아니고, 하나님이 세우신 본질이 있으며, 그 본질이 모든 개별 존재를 이루는 근거이다”라고 확신했습니다.

3) 대표 인물: 에리우게나 – 안셀무스 – 아퀴나스

  요한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모든 존재는 하나님 안에서 본질을 갖는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원천, 즉 모든 본질의 근원입니다. 안셀무스는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존재이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 자체가 “하나님됨”이라는 본질이 실제로 본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개별 사물은 보편적 본질에 참여함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개별 사자는 “사자됨”을 나누어 가짐으로 사자라는 주장입니다. 모두 공통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4) 신학에서 실재론이 중요한 이유

  실재론이 없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핵심적인 신학 개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본질, 삼위일체의 하나님, 보편 교회의 개념, 성례전의 은혜가 공통된 의미를 갖는 이유,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편 개념이 실재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예를들어 삼위일체를 생각해 볼까요?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다른 위격적 존재이지만, 하나의 본질인 ‘신성(divine essence)’을 공유한다는 설명은 실재론적 사고 없이는 매우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그래서 중세 신학은 실재론을 선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5) 실재론의 장점

  신학을 안정시키고 구조를 만들어 준다: 교회론, 삼위일체론, 은혜론 등은 모두 ‘공통 본질’ 개념을 필요로 합니다.

도덕과 진리의 기준을 세운다: 선함, 진리, 등이 단순 취향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가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질서를 설명한다: 세상은 혼란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이 반영된 질서 있는 세계라는 관점이 가능해집니다.

6) 실재론의 약점

  너무 추상적이다: “사자됨”이라는 말을 현대인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개별성, 다양성, 변화 등을 설명할 때 부족함 점이 있습니다.

  세상은 본질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구체적 현실 보다 ‘개념’을 더 실제처럼 취급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 사람보다 ‘이상적 인간 개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도 생기게 됩니다. 이 약점은 나중에 아벨라르와 오캄 같은 학자들이 강하게 비판하는 핵심 내용입니다.

7) 실재론은 왜 중요한가?

  실재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그 단어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깊은 질서를 가르키는 창문이다.” 이 관점은 중세 신학의 기초였고, 오늘 우리가 신학을 공부할 때도 여전히 필요한 토대입니다. 하지만 이 탐구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실재론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파악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유명론 (Nominalism) - “보편은 이름일 뿐이다”

 

  우리가 ‘사자’, ‘사람’, ‘선함’, ‘악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중세 유명론자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 단어가 가리키는 ‘공통된 본질’이 정말 있다면, 어디어 존재하나요? 우리가 본 적이 있나요?”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보편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개별자들을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 이름일 뿐입니다.” 그래서 실재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유명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1) 유명론의 핵심: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개별자들 뿐이다.

  유명론자들, 특히 윌리엄 오캄(William of Ockham)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실제 사자들만 존재한다. 그러나 ‘사자됨’이라는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편하게 부르기 위해 만들어낸 이름일 뿐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사과, 곧 부사, 홍옥, 맛있는 사과, 맛없는 사과를 모두 ‘사과’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유명론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 모든 사과가 공유하는 ‘사과됨’이라는 본질을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있는 것은 각각 다른, 개별 사과들 뿐입니다. 그래서 유명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과’라는 이름을 붙인 순간, 그것이 보편처럼 보일 뿐이다.”

2) 왜 유명론이 등장했을까? - 너무 추상적인 실재론에 대한 반발

  실재론은 너무 많은 것을 ‘하늘 위에 존재하는 본질’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사자됨, 인간됨, 선함, 아름다움, 교회의 본질, 성례의 본질, 진리의 본질 등 실재론의 세계는 너무 크고, 너무 플라톤적이고, 너무 ‘이데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명론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추상 세계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개별 사물뿐입니다.” 이 말은 중세 철학을 뒤흔들었고, 중세 신학의 구조 자체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3) 오캄의 면도날 – 불필요한 것은 잘라라

  유명론을 대표하는 문장은 이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어떤 것을 가정하지 말라.” 즉, ‘사자됨’이라는 본질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고, ‘인간됨’이라는 추상 개념 없이도 인간을 설명할 수 있으니, 우리가 보는 개별 사물만으로 충분하다는 설명입니다. 이 원리는 중세 신학을 넘어 근대 과학, 경험주의, 분석 철학, 심지어 오늘날 AI 알고리즘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전환점이 됩니다.

4) 유명론의 장점

  개별성, 다양성, 현실성을 강조한다: 실재론이 너무 추상적이라면, 유명론은 철저히 현실의 사물을 기반으로 합니다. ‘사자됨’을 설명하지 말고, 실제 사자를 연구하라는 입장이 유명론자들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경험을 중요시하는 현대적 사고와 매우 가깝습니다.

  과학적 사고와 잘 맞는다: 자연의 현상은 ‘본질’이라는 추상 개념으로 설명되기보다는 실험과 관찰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근대 과학혁명의 정신으로 연결됩니다.

  AI 시대의 데이터 기반 사고와 거의 동일하다: 유명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편은 이름일 뿐이고, 진짜는 개별 데이터뿐이다.” AI도 같은 방식으로 학습하는데, 사자됨이라는 본질을 설명함으로써 ‘사자’의 개념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별 이미지에서 ‘공동 패턴’을 계산해 냅니다. 그래서 유명론은 AI 시대에 다시 주목해야하는 인식 방법론이 됩니다.

5) 유명론의 약점

  ‘진리’, ‘선함’, ‘정의’ 같은 보편적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보편이 없다면,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교회의 보편성은 무엇인가? 인간 존엄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해 유명론은 답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신학의 큰 구조가 흔들린다: 삼위일체, 성례, 교회론 등은 실재론에서 말하는 ‘공통 본질’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명론 개념은 이름일 뿐이고, 존재하는 것은 개별적인 것뿐이라고 주장하여 신학이 더 이상 단단한 본질 위에서 설명되기 어렵게 되는 구조입니다.

6) 유명론은 중세를 무너뜨리고 근대를 열었다

  유명론은 단순한 철학적 주장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입장은 다음과 같은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신학적 사유 중심의 사회를 경험 및 관찰 중심의 사회로, 공통 본질 중심 세계관을 개별 및 개성 중심의 세계관으로, 권위 중심의 세계를 논증과 증거 중심의 세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중세가 무너지고 근대로 넘어가는 핵심 배경에는 바로 이 유명론적 전환이 있습니다.

7) 유명론은 왜 중요한가?

  실재론이 “보편은 실재로 존재한다”고 말했다면, 유명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붙인 이름이 너무 많은 걸 설명하려고 했다. 진짜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있는 개별 존재들이다.” 이 관점은 중세를 흔들었고, 근대를 열었으며, 오늘날 AI, 교육, 심리학, 데이터 과학에까지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